안녕하세요, 의창입니다.
이번에는 세계사 속 부의 대반전(장진현)을 읽었습니다.
부의 인문학(브라운스톤)을 감명깊게 읽었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극 권하기도 하였고, 2번 읽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도 감명깊게 읽은 책에 올리고 싶네요 ㅎㅎ.
세계사 속 사건들을 부의 관점에서 해석하였는데, 굉장히 논리적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시사하는 점도 많습니다.
간만에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을 읽었네요!
아마 저도 한번 더 읽지 않을까 싶습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통일이 시작되었을 초기부터 일부 투자자들은 재빠르게 동독 화폐에 투자했다.
통일은 정치적 행위이므로, 동독의 마르크화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할 것으로 일찌감치 예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예상대로 이듬해인 1990년 7월 마르크화가 1대 1로 통일되었고,
발빠르게 동독 화폐에 투자한 사람들은 큰 차익을 얻었다.
당시 동독과 서독의 실질 경쟁력 차이는 대략 1대 9 정도였는데,
교환비율이 1대 1로 확정되었으므로,
이론적으로 동독 마르크화의 가치가 9배 높게 평가된 것이고,
독일 마르크화에 투자한 이들은 9배의 차익을 올린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과 북한의 경제규모가 약 50배 차이가 난다면, 매우 거칠게 말해 화폐가치의 차이도 수십 배인 셈이다.(중략)
그런데 한국의 1만원과 북한의 1만 원을 똑같이 1대 1로 교환해준다면,
북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는 셈이다.
1990년 7월 동독과 서독의 마르크화 통일은 바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p.33]
이처럼 역사의 실체는 경제와 부의 시각으로 견고하게 바라볼 때 더 잘 드러난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방향성을 정확하게 낚아챈 사람은 그 흐름 위로 올라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낙마했다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방향성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의사결정이 두렵지 않다.
우리는 사회변동의 방향성을 정교하게 읽어내고, 때로 이율배반적인 사안이 닥치더라도 그 정확한 사유를 알아채야 한다.
그런 통찰력이야말로 삶의 무기로 작용할 것이다.
[p.54]
여기서 잠시 생각을 해보자.
어떤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까? 조선의 개혁정신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중요한 점은 끊임없이 요동치는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는 점이다.
개인은 안주와 고착을 선호하더라도, 사회는 개인에게 역동성을 부여해야 한다
왜 조선시대 말기에 경쟁력을 잃고 외세에 휘둘렸을까.
토지와 노비제도에 의존하여 ‘편안한 부’를 추구한 통치이념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경쟁없이 주어지는 안락이 최대의 문제였다.
[p.62]
진실은 종종 외형 뒤에 가려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화려한 인공도시 두바이를 건설한 산유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긴장감이 있다.
언젠가는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긴장감이 세대를 따라 이들의 혈관 속에 파고든다.(중략)
기쁨과 긴장은 동일한 현상의 이면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인공도시의 화려함 속에서 비장함을 읽어낸다.
관광객의 방문 수를 높이기 위해 이국적 차별성을 내세우며 위장한 서구 스타일의 멋진 에미리트 힐도 위장된 편안함에 불과하다.
야자수 모양의 섬, 웅대한 공항, 눈을 형상화한 공원, 거대한 쇼핑센터, 차별적인 공연장과 사파리 등도 미세한 오류가 발생하면
오작동하고 무너져 내리면 결국 폐허가 될 수 있다.
화려함 속에 긴장감이 배어 있고, 떨림의 긴장 속에 화려함이 깃든다.
인공도시 두바이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각고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감이 인공도시를 만들었고, 이런 원리는 투자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투자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상과 행위 속 은폐된 불균형의 이해가 투자의 핵심이다.”
[p.110]
우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역사를 관통한다.
재산을 비교하며 타인보다 우월감을 느끼려하고, 계급의 피라미드를 오르려 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타인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자 발버둥치는 것은 지속되는 불안을 보여줄 뿐이다.
완전한 충족은 없으며, 경제적인 숫자도 부질없다.
가혹한 상대평가만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인간은 주체적 자아를 얻지 못하고 객체로 전락한다.
주체성이 없으니 항상 비교하고 자신을 파괴한다.
긴장의 연속이다.
욕구가 욕구를 재창조하는 사슬은 영원하다.
[p.180]
인간은 일반적으로 존재의 확실성을 붙들고 싶어 한다.
나 자신의 부재는 만물의 부존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철저한 계층을 만들어 우월 욕구를 탐닉한다.
인류는 평등을 추구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평등을 즐겨왔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계급적이라는 루소의 말은 지금도 통한다.
인류의 역사는 부를 둘러싼 갈등의 결과이다.
그 결과 사회적 계층화가 이루어지며 부는 폭력성을 낳고, 불평등의 심화는 자유를 위협한다.(중략)
앞에서도 거듭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때로는 경제적 시각으로, 때로는 문화적 시각으로,
또 때로는 철학적 시각으로 사건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계의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사회변동의 방향성을 꿰뚫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p.182]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한 ‘차별적 획득’을 말했고, 사회주의는 노동을 통한 ‘균등배분’을 말했다.
만약 균등배분이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왔다면 인간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자본이 인간을 속인 것일까, 노동이 인간을 속인 것일까?”
인간을 현혹시킨 것은 결국 스스로의 이기적인 본성이다.
‘균등배분’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한, 인간은 결코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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